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 마르크스/평가 (문단 편집) ==== 반박 ==== 이에 대한 변론으로는 [[피장파장의 오류|'개인의 인성'과 '사상가로서의 이론'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굳이 따진다면 어느 시대든 간에 기본적으로 놀고 먹고 하는 '''유희'''와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거나 공부하는 등 '''사색'''을 하기 위해서는 하루 24시간 먹고 사는 것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이 삶의 여유가 필요한 것이라서, 굳이 마르크스뿐 아니라 세계사에서 중대한 변혁을 주도하거나 불의에 항거하거나 한 이론가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대개는 중산층 이상의 신분이었다. 객관적으로 남겨진 사료를 봐선 아무리 잘 쳐줘도 인간성이 좋다고 하긴 힘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가지고서 그의 사상도 옳네 그르네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피카소]]는 어디 인성이 훌륭해서 미술사에서 그리 대접받던가?[* 다만 예술가인 피카소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화가로서 피카소는 개인 인성에 조금 문제가 있어도(여성편력 등) 적어도 위선자라고 욕먹을 만한 잘못을 한 건 아니었고, 직업에 대한 비판점으로는 기껏해야 라이벌 관계였던 마티스의 작풍을 베끼기도 했다는 점 정도뿐이다. 반면 마르크스는 평생 동안 노동자들의 부조리한 삶과 사회구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공산주의를 내세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타고난 계층이나 부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굳이 내던질 필요는 없어서 그랬다고 쳐도, 그 부로 자기 앞가림도 못할 정도로 사치를 부리고 온갖 인성 논란을 자초한 것은 명백히 정치경제학 사상가로선 결점이다. 아닌말로 처음에는 영웅으로 출세한 사람도 권력을 잡으며 악랄한 독재자로 변질되기 쉬운데 처음부터 이 모양인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뤄지고 자신이 그 독재의 중심에 선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지만)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마르크스주의를 지구상에 최초로 실현한 [[레닌]]도 자기 이념을 배신하지는 않았고 실제로도 당시 기준으로는 선진적인 면도 보였지만, 사적으로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고 노동자를 같은 계급으로 안 보는 등 출신성분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권력을 잡은 후에는 독재자로 변해갔으며 숱한 정적숙청을 벌였다. 심지어 [[김일성]]이나 [[폴 포트]] 같은 막장 공산주의자도 일단 젊었을 적에는 순수한 면도 있었던 이상가이긴 했으니까. 결국 총평을 내리면 만약 사상가에게 그 사상을 실현할 권력이 주어진다면 그 사상가가 타락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기준으로는 인성을 보지 않을수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마르크스는 단지 권력을 잡은 적이 없어서 타락한 인성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대거 등장한 좌파 사상가 및 행동 양식 또한 그와 다를 바 없다. 역시 유대계 중상층 출신이었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도, 마르크스 동시대 인물이었으며, 후대 아나키즘과 민주 사회주의, 그리고 러시아 대중적 사회주의의 도덕적 지향성을 놓은 알렉산드르 게르첸도, 국제 아나키즘의 선각자이자 1차 인터내셔널에서 마르크스와 대차게 싸운 후 공산주의와 결별한 [[미하일 바쿠닌]]도 해당된다. 소련의 탄생을 이끌어낸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 또한 중산층의 삶을 사는 집안이었으며 그 아버지는 공로로 하급 귀족위를 받을 정도의 집안이었다. 실제로 당시 사회주의 운동가 중에는 중상층 출신자가 다수였으며 이들은 중산층 이상의 생활양식에 익숙했고, 관용적이었다. 룩셈부르크 시절 숱한 이론가들과 혁명가들이 모여있던 독일 사민당은 왈츠 파티를 열고 [[와인]]을 마시는 등의 세련된 모습을 보였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중상층 출신 운동가들이 하층 출신 운동가에 비해 변절하는 일은 적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독서량과 사고력은 물론이고, [[당원]]들 앞에서 상대방의 논리를 논파하며 설득할 웅변력, 게다가 외국의 활동가들을 만나 사상적 교류를 하고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외국어 능력까지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론가들은 어렸을 때부터 공장에서 노가다하는 대신 부모님이 사준 책 보고 자란 사람들인 경우가 많은 게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다.[* 근대 이후로 큰 인구 이동이 없고, 전통적으로 사회 구조 자체가 상당히 정적인 동양, 특히 사방이 바다와 국경 아닌 국경으로 막힌 한국식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유럽은 기본적으로 수많은 다양한 문화와 국가들이 국경 하나 두고 갈라져 있어 스페인에서 옳은 소리하다 찍히면 프랑스로, 프랑스에 찍히면 영국으로 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발상이 별 의미를 가지지 않고, 자기의 사상적 신념에 따라 국적을 바꾸는 일도 흔하다. 콘스탄틴 로코소프스키(이 사람은 인쇄소 일을 하며 독학으로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였다) 같은 인물도 우리나라에서야 '조국을 러시아에게 팔아먹은 매국노' 같은 소리를 듣지만, 서양에서는 '폴란드인이 공산주의를 신봉해 소련군을 끌고 조국에 진주했다'라는 사실 자체는 그리 욕 먹지 않는다.][* 물론 프루동처럼 진짜 인쇄소에서 "노가다" 하면서 글을 배워 결국 사회적 아나키즘이라는 사조의 창시자가 된 케이스도 존재한다. 이외에도 [[안토니오 그람시]]가 있는데 그람시는 스탈린이나 호치민과 달리 교육도 못받아서 무려 독학으로 공산주의를 배운데다가 가난한데 키도 작고 못생겨서 고생을 많이 했다.] 마르크스가 한 말부터가 '이론은 곧 무기다'인데, 실로 '이론'은 불의에 항거하는 대중활동, 체제를 전복시키는 혁명투쟁의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지만 정작 그 불의와 부조리의 피해자인 노동계급에서 '왜 내가 핍박을 받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를 곰곰히 생각해보고 그 부조리에 항거할 방법들을 발견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시대의 계몽주의의 영향을 짙게 받은 당대 근대사상은 어쩔 수 없이 계몽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성향을 띌 수 밖에 없다. 당대 수 많은 사상가, 활동가, 혁명가들은 심한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충분히 공부할 수 있었던 여유, 그런 여유를 통해 획득한 지식, 그러한 지식을 개인의 영달에 쓰기 보다는 스스로는 일어나 싸울 수 없는 대중들 앞에 서는 '선봉(vanguard)'이 되어 부조리를 혁파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뭉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단 북한에서는 여기에 쓰여진 이른바 '리론가'들은 경멸의 대상이다.] 마르크스, 엥겔스, 바쿠닌, 게르첸, 등 19세기 좌파 사상적 조류의 큰 이름들 치고 진짜 노동자 계급 출신인 경우는 없거나, 설령 집 자체는 가난했어도 자신의 명석함을 눈여겨 본 주변인들이 지원을 해주는 등 집안 형편과는 별도로 공부하면서 자랄 수 있었던 경우들이 대다수다. 심지어 주변에서 무식하다고 비웃었던 스탈린도 신학교 다니면서 지식인으로 필요한 교양과 독서는 그래도 다 기본적으로 하고 혁명가의 길을 걸었다. 또한 이러한 중상층 출신 운동가들의 사상에 대한 충성심도 이런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가는 현상이다. 또한 이에 대해 사학자들이 분석한 바가 있는데 중상층 출신 운동가들은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상태에서 정말로 해당 사상에 경도되어 혁명에 참여하지만, 하층은 자신들이 지금 놓여있는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해 혁명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그럴 기회만 온다면 지금까지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인해 변절해서 기존의 혁명 대상이었던 상층 라인에 서려 든다는 내용이다. 당장 사람이 이상을 품고 그에 투신한다는 거 자체가 어렸을 때부터 눈 앞의 물리적 이익을 넘어 뭔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믿는 습관이 있어야 하는데, 당장 배가 고프고 추우면 이상이고 철학적 지향성이고 뭐고 눈에나 들어 오겠는가? 단순히 자기 처지에 기반하여 자연스러운 계급적 증오심으로 좌익에 투신한 사람들이야 "먹고 살기 위해서 했는데 알고 보니 걍 체제에 충성하는 게 더 밥벌이가 된다"라고 철면피만 깔면 쉽게 전향할 수 있지만, 중상층 출신의 이론가들은 자신들이 구상하고, 서술하고, 선동해 온 일생의 가치관 자체를 버리는 일이니 더 우직하게 자기 사상을 관철할 수 있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생활수준에 있어서 여유를 갖고 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론적 고찰을 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나중에 상황이 변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공부하고 배운 것에 비추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보다 확고한 중심이 자리잡았기에 쉽게 변절하지 않는 반면, 탄탄한 이론적 기초 없이 정의감과 정열, 순간의 열혈한 증오심으로 투쟁을 시작한 사람들은 [[소련 붕괴]], [[고난의 행군]]과 같은 상황이 닥치면 기존의 입장을 180도 바꾸어 정반대의 [[뉴라이트]] 정치적 세력에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다. 아니면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와 같은 더 극단적인 노선으로 나가며 [[킬링필드|기존 사회 계층들을 다 절멸시켰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인종차별을 했던 것으로 보이고 인정하지만, 그의 통찰력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흑표당]]의 창립자이자 지도자 휴이 뉴턴이 말한 적이 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카를 마르크스, version=1429, paragraph=4)] [[분류:카를 마르크스]][[분류:인물에 대한 평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